토브하우스

말이 아닌 용기로 왕이 된 남자, 영화 <킹스 스피치> 본문

언어치료

말이 아닌 용기로 왕이 된 남자, 영화 <킹스 스피치>

설레어리 2025. 7. 18. 15:10
반응형
SMALL

말이 아닌 용기로 왕이 된 남자, 영화 <킹스 스피치>

영국의 조지 6세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발음에 실패할 때마다 주변은 침묵했고, 당황한 그의 눈빛은 더욱 얼어붙었다. 그렇게 그는 말더듬(stuttering)이라는 유창성장애를 가진 채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곁엔 말보다 마음을 먼저 듣는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가 있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켜야 하는 역사적 순간, 말더듬이 있는 왕이 라디오를 통해 전 국민에게 연설을 해야 하는 위기가 찾아온다. 이 영화는 단순한 치료기록이나 왕의 전기 영화가 아니다. 한 인간이 자신이 가진 약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심리극이자 성장 서사다.

 

말더듬은 단순히 발음의 문제가 아니다

 

킹 조지 6세, 본명 앨버트는 영화 초반부터 공식석상에서 말을 더듬으며 극도의 긴장과 수치를 경험한다. 그는 왕위 계승을 원하지 않았지만, 형 에드워드 8세의 갑작스러운 퇴위로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때 그는 다시 마이크 앞에 서야 한다.

 

영화 속 말더듬은 단순한 언어의 결함이 아니다. 트라우마, 심리적 억압, 낮은 자존감과 같은 복합적인 정서적 요소가 얽혀 있다. 어린 시절 간호사에게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교정당하고, 병약한 형제와 비교당한 기억은 그의 유창성을 더욱 억눌렀다.

 

언어치료사 로그, 말보다 사람을 치료하다

라이오넬 로그는 공식 자격증이 없는 ‘비정통적인’ 언어치료사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법을 알고 있다. 로그는 알버트를 “폐하”가 아닌 “버티(Bertie)“라는 개인으로 부르며, 엄격한 왕실 예절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신뢰 관계를 먼저 쌓는다.

그가 사용하는 치료기법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다. 욕설을 섞어 노래하듯 말하기, 누워서 말하기, 거울 앞 발음 훈련 등은 모두 현대 유창성 치료의 선구적 방식으로 평가된다. 그는 언어가 아니라 사람을 치료한 것이다.

유창성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질문

 

이 영화는 말더듬을 ‘극복의 대상’이자 ‘극복의 방식’으로 다룬다. 조지 6세는 끝내 말더듬을 완전히 없애진 못한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앞에서 연설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단어 사이에 숨을 고르며, 말을 더듬으면서도 당당히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묻는다.

“유창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 역시, 말더듬을 단순한 ‘결함’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말하기 방식으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킹스 스피치는 말더듬이라는 유창성장애를 통해 소통, 용기, 그리고 관계의 힘을 이야기한다. 화려한 연설이 아니라, 더듬더듬 이어가는 진심의 말이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말더듬은 극복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살아가야 할 정체성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조지 6세의 말처럼,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내 목소리는 국민의 목소리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유창성장애를 바라보는 우리 시선 역시 조금은 유연해졌기를 바란다.

반응형
LIST